![]() 캐릭터를 설명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한계를 드러냅니다. 그는 에브너의 인간성을 가정적인 면모에서 찾죠. 그는 아내가 임신해서 곧 아버지가 될 가장입니다. 아내를 사랑하거나 동료들에게 음식을 차려 대접하는 것을 보면 분명 좋은 가장이죠. 이런 식의 캐릭터 설명이 몇 번이고 반복됩니다. 문득 ‘좋은 가장’이라는 점을 뺀다면 에브너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졌습니다. 감독은, 관객의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인간적인’ 캐릭터임을 강조하기 위해 자꾸만 가족을 언급합니다. 그것도 대안적인 가족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가족이 아닌, 협소하고 전통적인 범위의 가부장적 가족 말이죠. 그것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지난 행보에서 계속 지적되어 왔던 보수성과 편협함이기도 합니다. 가족을 빗대지 않고는 캐릭터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 자체로 큰 단점이 되지는 않습니다만 한계가 되기는 하죠. 가족에 대해 별로 언급되지 않는 모사드 팀원들의 캐릭터는 단조롭습니다. 그들의 ‘인간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들이 식탁에 둘러 앉아 차례차례 자기 소개를 하는 장면을 집어 넣지만 캐릭터는 그런 노골적이고 일회적인 방법으로 구축되는 것이 아니죠. 캐릭터는 관계 속에서 설명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다른 사람에 대한 반응,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방식 등등이 모여야 비로소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누구누구고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좋아해요, 라는 자기 소개만으로는 그 의외성과 복합성을 다 가늠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잖아요. 그러니 가족을 끌어 오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면 팀원들 간의 관계를 통해 캐릭터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딱히 팀원들 간의 관계가 세심하게 표현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묘사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그들 각자를 ‘인간적’으로 묘사하고 있죠.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누군가는 아버지로 만들었고, 누군가는 장을 보게 했으며, 누군가는 생면부지의 에브너에게 인사를 건네도록 만들었고, 누군가는 동료들과 웃고 떠들도록 만들었죠. 지난번 글에 어떤 분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묘사되었다고 해서 그들의 테러가 정당화된 것은 아니’라는 덧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음미해 볼만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진정으로 공평하고 휴머니즘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 그런 피상적인 인간성 묘사보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을 제시해주는 편이 더 사려 깊지 않았을까요? (비공개 덧글이었지만 이런 부분을 더 생각하게 해주신 Mr-Bart님께 감사드립니다!) 다가오는 3월 5일은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날입니다. 처음부터 오스카를 노리고 만든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던 <뮌헨>은 예의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한 5개 부문 후보에 올랐죠. 그러나 그것이 <뮌헨>이 오스카를 받을 만큼 훌륭한 영화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열린 미국 내 많은 영화 시상식에서 <뮌헨>은 거의 외면 받다시피 했거든요. 아카데미 시상식의 바로미터 격인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뮌헨>을 선택한 것은 올해 아카데미의 정치적 성향 탓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작품들을 살펴보면 예년에 비해 유독 정치, 사회적 발언을 하는 영화들이 많습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성 정체성 문제를, <크래쉬>는 인종 차별 문제를, <카포티>와 <굿 나잇, 앤 굿 럭>은 언론 윤리의 책임 문제를 다뤘죠.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만 해도 세 편이고 9.11, 이라크 전 등을 겪으면서 미국 영화가 공적인 영역에 관심이 많아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판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노미네이트된 데 대해 “아카데미가 내 영화를 알아봐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카데미가 그런 용기를 가지고 있을지 의심스러웠다”는 소감을 밝혔죠. 물론 유대인 감독으로서 이런 문제에 대해 발언하기까지 용기가 필요했을 거고, 최선을 다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난번 글에 Reverend-L님께서 달아주신 덧글처럼 그가 ‘미국과 이스라엘 눈치를 보느라 정작 정말 자기가 생각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안전하게 돈도 벌고 아티스트로서의 명성도 안전하게 얻고 싶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그는 “내 영화는 누구도 공격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이 내 영화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대사를 하고, 그 대사를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작가로 하여금 쓰게 했다는 점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는 내가 감히 논할 자격이 있나 싶을 정도로 복잡한 것이다”라며 자신의 영화가 비정치적인 것임을 강조하며 한 걸음 물러섰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겁니다. 아무리 세계적인 영화 감독이라 하지만, 그도 종국엔 사람들의 비판에 상처 받고, 국적에 따른 정체성을 지닌 한 인간이니까요. 하지만 그가 이 영화가 미칠 파장에 대해서 충분히 가늠했다는 점에서 자신의 입장을 좀더 명확히 하고, 그에 대해 책임감을 가졌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감독이 그런 태도를 지니지 못했을 때, 영화는 다만 선정주의적 시도로 전락할 수 있거든요. 정치적으로 첨예한 사안은 이목을 끌게 마련입니다. 특히나 지금의 미국처럼, 신경이 곤두선 사회에서는요. 게다가 그런 사안을 다루면 의식 있는 감독으로 인정 받을 확률도 높아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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