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 올바른 <뮌헨>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 1

영화 리뷰에는 어떤 요소가 포함되어야 하는 거냐고 누군가가 제게 물었습니다. 글쎄요. 당신이 느낀 것, 당신이 생각한 것이겠죠. 저는 좀 곤란해 하며 대답했어요. 영화 리뷰라는 건 대학 입시 논술처럼 정형화된 글이 아니어서 일정한 형식에 구애 받지 않을수록 더 진심으로 쓸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요. 아, 대신 정치적으로 위험한 부분은 지적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라고 덧붙였습니다. 영화가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까지는 좋지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여자나 장애인이나 게이나 특정 국적을 지닌 사람들이 우스꽝스러워지거나 희생되어서는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내러티브 상의 갈등을 편리하게 봉합하기 위해서 부적절한 편견이나 상식, 구조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상업 영화에서 이런 부분은 전면으로 드러나기 보다는 교묘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간과하기가 쉽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해서 무조건 배척해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떤 부분이 무례할 수 있는지, 위험할 수 있는지 알고 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영화 <뮌헨>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신작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만든 후 “<쉰들러 리스트>에 이어 두번째로 힘들게 만든 영화다. 다시는 팝콘을 먹으면서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말로 <E.T>의 시절에 영원한 안녕을 고했습니다. 그만큼 그 자신에게는 의미가 있고 전환점이 된 영화죠. 그는 심지어 “이 영화를 만들면 유대인 친구들을 잃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각오를 했다는 뜻이었죠. 아니나 다를까 <뮌헨>은 전격적으로 대중에게 공개되기 이전부터 유대인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때는 1972년. 올림픽이 열리고 있던 독일 뮌헨에 팔레스타인 테러단인 ‘검은 9월단’이 찾아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에 침입하여 그들을 인질로 삼은 후 인질극을 벌이다가 결국 선수 모두를 살해하죠. 이스라엘은 분노합니다. 그리고 비밀리에 암살단을 조직하죠. 에릭 바나가 연기한 아브너는 폭탄 제조 전문가, 서류 위조 전문가 등으로 이루어진 팀을 이끌고 ‘검은 9월단’ 멤버들을 살해하러 떠나죠.

저널리스트인 조지 요나스가 쓴 <복수>를 각색해 만든 이 이야기는 실화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제법 그럴 듯한 논리를 가지고 있어요. 유대인들이 이 영화를 탐탁치 않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겠죠? 그들은 일단 이런 복수극의 존재를 완강하게 부인합니다.

처음에는 아버지와도 같은 국가를 위해 일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의의를 의심하지 않던 아브너는 그러나 테러범들을 하나 하나 처치해가면서 점차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가 만난 테러범들은 대체로 괴물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이었고, 테러범을 살해하는 과정에서 민간인의 희생은 없도록 하겠다는 처음 의지는 실질적으로 실현하기가 어려우며, 무엇보다도 이에는 이, 눈에는 눈, 폭력에는 폭력으로 갚아주겠다는 대응 방식이 과연 옳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뒤집어 보면, 아브너 역시 ‘검은 9월단’과 다름없는 테러범인 셈이잖아요.

이스라엘 정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팔레스타인인도 유대인도 아닌 제 3자의 시각에서 보면 <뮌헨>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입니다. 폭력이 폭력을 낳는 현재 국제 정세에 대한 비판 의식도 시기 적절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인간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요. 국내 언론의 리뷰들도,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춰 후한 점수를 준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하지만 솔직히 저는 이 영화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by 박우진 | 2006/02/17 11:58 | 컬럼 | 트랙백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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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6/02/17 12:3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guss at 2006/02/17 12:57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분당갈매기 at 2006/02/17 13:11
정말 맘에 들지 않는 영화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에 더 이상은 기대가 되지 않습니다. 정치적 관점에서만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라는 메시지 하나 정도만 있을 뿐, 반복되는 이야기, 넘치거나 모자란 장면 묘사 들로 어지럽다는 인상만 가득했습니다. 영화가 끝나자... 제 앞줄의 한 관람객은 "내가 그 살라메를 꼭 죽여줄테닷." 이라고 일갈하시더군요.
Commented by Ax3 at 2006/02/17 13:46
처음에 이 영화 광고를 봤을때는 유대인 옹호영화인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래도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서 접한 영화에 대한 반응은 예상과는 다르더군요. 한번 꼭 보고싶군요.
Post Script. 알리 핫산 살라메는 이 사건 이후 몇년뒤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결국 죽었습니다. -_-;; 사건에 관련된 범인은 현재 단 한명만이 생존해 있다는군요.
Commented by 머글관찰자 at 2006/02/17 16:03
음...꼭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영화네요^^ 관심이 일단 많기도 하지만 유대인인 스필버그가 어떻게 이 사건을 그려냈을까...언론의 리뷰 혹은 프리뷰로는 제 갈증을 풀기가...ㅎㅎ 요새 영파라치들 난리라던데..저는 주로 다운 받아서 보는 편이었거든요..요새는 못하지만 ㅎㅎ 아무튼 글 잘 봤어요^^
Commented by marlowe at 2006/02/17 18:14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를 지적해주셨으면 더 좋았을 겁니다.
1번을 달고 있는 걸로 보아, 다음 번에 그 이유를 설명하실 건가 보군요.
Commented by JP at 2006/02/17 18:48
그러게요. 정작 맘에 안드는 이유는 보이질 않네요.
그나저나 박우진님 논리대로 만든 영화는 별로 재미없겠네요.
전 그런 '올바른' 영화는 그다지...

근데 그 올바른 정치적 입장이라는게 가능하기는 한가요?
전 그닥...
Commented by gaya at 2006/02/17 19:48
정말..정작 궁금한,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이 글엔 나와있지 않은데. 아마 후속글에 밝혀주시려나 보지요.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6/02/17 20:02
그런데 왜 맘에 안드신 건가요? 저도 그게 궁금..-_-;
Commented by 가을 at 2006/02/17 20:50
저도 개인적으로 상당히 괜찮게 본 지라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가 궁금합니다. 거의 드라마 예고 수준으로 사람 궁금하도록 글을 쓰셨네요.^^; 포스팅을 나누는 건 좋지만, 너무 잘게 자르신 것 같아요.
Commented by freki at 2006/02/17 23:24
스필버그로써는 분명 최선을 다한 영화라고 생각되는지라 어디가 마음에 안드는지 궁금하내요. 뭐 사실 저야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같이 토나오는 영화만 아니라면 다 재미있게 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Commented by 마른미역 at 2006/02/17 23:32
오늘 보고왔는데, 정치적으로도 별로 올바른 것 같지 않더군요.
Commented by 다스베이더 at 2006/02/17 23:37
솔직히 볼때는 9명이 몰려가서 봤기때문에 지루한 느낌을 받은 애들이 많더군요. 오락용영화가 절대 아니라는걸 알면서 본 최후일까.
복수는 복수는 나을뿐이라는 스필버그의 결론에는 공감하지만, 역시 그가 유대인이어서인지 곳곳에 스며들어있는 '완전소중 이스라엘'정신이 어딘가 모르게 느껴졌습니다.
영화를 볼때는 '에이 이게 뭐야'할지라도, 이 영화가 계속 생각나고 생각할수록 뭔가 무거운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요,
Commented by Seele at 2006/02/18 05:27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는 절대 아닌 것 같더군요.
'정치적으로 올바'른 척 하는 영화이긴 해도 말이죠.
뭐, 그래도 이 정도면 모르는 체 속아넘어가줘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만....
Commented by 닐스 at 2006/02/18 05:32
글쎄요, 저는 스필버그가 공평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네요.
이스라엘을 어느정도 옹호하는 분위기가 풍겼던 것 같거든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어떤 느낌을 갖게될지 궁금해지네요.
Commented by Reverend-L at 2006/02/18 09:34
스필버그는 미국과 이스라엘 눈치를 너무 많이 봐요. 정작 정말 자기가 생각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Reverend-L at 2006/02/18 09:35
안전하게 돈도 벌고 아티스트로서 명성도 얻고 싶은거죠. 안전하게.
Commented by 박우진 at 2006/02/21 15:07
<스크린> 3월호 마감하는 중입니다. 미처 신경쓰지 못한 사이에 이렇게나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해요^^;
guss 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종종 들러주세요.
분당갈매기 님/ 그쵸? 정치성은 차치하고 영화적으로도 썩 재미있는 작품은 아닌 것 같아요.
Ax3 님/ 그렇군요. 뒷 이야기 감사드려요^^
머글관찰자 님/ 그 영파라치라는 제도가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궁금하더라고요^^; 기회가 닿는다면 한번 보세요~
marlowe 님, gaya 님, 자그니 님/ 네, 다음 글부터 본격적으로 이유를 밝힐 예정입니다~
JP 님/ 저도 사실 늘 그런 올바름이 가능할까 고민해요. 하지만 그것을 회의한다고 해서 무력해지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 아닐까, 하는 순환논리로^^: 하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라고 해서 재미가 없다는 편견은 버려주세요~



Commented by 박우진 at 2006/02/21 15:07
가을 님/ 기대하시라~ 두둥을 의도한 건 아니었고요^^: 다음 본격적인 이야기가 도중에 잘리는 일이 없도록 한다고 한 게...^^;
freki 님/ 사실 영화에 대해 발언하는 직업 자체가 좀 비겁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감독이며 스태프들이 노고를 다해 만들어낸 창작물을 방구석에 앉아 멋대로 재단하다니. 그래도, 철딱서니없는 버전으로 말씀드리자면, 영화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거, 재미있지 않나요? 홍홍^^;
마른미역 님, Seele 님/ 처음에는 언론에서 하도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식으로 부추겨놔서 그걸 좀 빗대본다는 의미에서 단정적으로 제목을 붙였는데요, 저도 글을 쓰다보니 자꾸만 이 영화가 과연 정치적으로 올바른 걸까, 하는 의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박우진 at 2006/02/21 15:07
다스베이더 님/ 시사회 때 같이 영화를 본 어떤 기자분은 "도대체 평상심으로 볼 수 없게 만든 영화"라는 호평인지 혹평인지 모를 말씀을 하시더군요. 다스베이더 님의 마음에 남은 무거움의 정체가 궁금한데요?
닐스 님/ 그러게요. 이스라엘 쪽의 반응은 많이 보도되었는데, 정작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반응은 알 수가 없네요.
Reverend-L 님/ 최근 스필버그의 발언을 보면, 님의 말씀이 정말 옳은 것 같아요. 스필버그의 발언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말씀드릴게요~
Commented by earth at 2006/03/23 04:29
ㅎㅎ
Commented by Tom at 2006/10/29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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