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화두: 나는 저널리스트인가? 에 대한 뜬금없는 사유 2
그러므로 다시 한번, 월간지 매체, 특히 영화 등 '문화' 잡지의 본분은 진실 규명보다는 진실에 대한 해석에 가깝다. 월간지에서는 청와대의 구구절절한 공식 발표보다는 그에 대한, 우리 동네 수퍼 아저씨의 "개소리"라는 신랄하고 명쾌한 단 한 마디의 평가가, 물론 매체의 편집 방향과 기조에 맞기만 하다면야, 더 굵고 날카로운 글자체로 인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잡지를 소비하는 독자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정치적이면서도 유희적인, 혹은 이런 식의 '정색한' 경계나 관념으로는 결코 붙들 수 없는 가뿐한 태도이다.(월간지 기자의 명함에는 'reporter'가 아닌 'editor'라는 직함이 적혀 있다)

 
이것은 물론 사적인 견해이므로 위 문단의 모든 문장의 끝에는 '라고 생각한다'라는 문구가 생략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다른 직업이 아닌 영화 잡지 기자를 업으로 선택할 때 고민했던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다. 글쓰기와 영화보기를 좋아한다는 것, 스트레이트하기보다는 만연체 인간이라는 것, 이런, 기질에 관련된 생물학적인 문제 외에, 직업을 선택할 때 고려한 '사회학적인' 사유였다. 매체가 다양해지고 그 숫자가 늘어나면서 점점 사적 견해와 취향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것, 다양성이 존중받고, 경계 없고 유연한 시각과 태도가 자연스러워지고, 이 모든 과정을 거쳐 결국 개개인의 취향은 더욱 확고해져가는(설사 현실이 그렇지 않다해도 종국엔 그 방향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흐름에 가장 기민하게 대응 할 수 있는 인쇄 매체는 잡지가 아닐까, 라는 것. 그러므로 '손석희를 어떻게 생각하세요?'에 대한 나의 지지는 영화 잡지 기자인 나의 자존심이자 정체성인 셈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좋은 영화 잡지 기자가 꼭 좋은 저널리스트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내가, 뜬금없이, 과연 나는 저널리스트일까? 를 고민하게 된 이유는 '저널리스트'라는 명칭이 다만 어떤 직업 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어떤 태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사적인 글이라고 나쁜 글이거나 가치가 떨어지는 글일리는 없다. 사적인 문체는 오히려 읽는 이의 심적 방어막을 허물어뜨려 내밀한 부분을 건드릴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문제는 보편성이다. 얼마나 바로 내 이야기이면서 우리의 이야기일 수 있는가. 특히나 기자가 쓰는 글에선, 매체의 타깃이 되는 독자층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그리고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감동을 주는 글의 매력이 상상력일 수도, 유려한 수사일 수도, 날카로운 성찰일 수도, 감수성이나 교양, 유머감각일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의 기본은 경험이다, 라고 아직은 상상력도 수사도 성찰도 감수성도 교양도 유머감각도 빈곤한 나는, 생각한다.

좋은 글을 쓰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고, 기자란 그 두 가지 목표의 접점에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고, 취업을 준비하던 재작년 겨울 어느 면접에서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내 경험은 그때보다 얼마나 더 풍성해졌을까. 얼마나 더 많은 삶의 풍경들이 나에게 환상이 아닌 현실로, 적확하고 설득력있는 단어와 문구들로 표현해낼 수 있을 만큼 구체적으로 다가왔을까. 나는 얼마나 '저널리스트적'으로 살았고, 글을 써 왔을까. 과연 나는 저널리스트일까. 대답하려니 자신이 없다.

나는 좋은 기자이기 이전에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고, 그게 어떤 분야가 됐던, 기사이건 에세이건 시건 소설이건 좋은 글은 저널리스트적인 태도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혹은 저널리스트적인 태도마저 없다면 도저히 좋은 글을 써낼 자신이 없는, 재능과 상상력이 결핍된 채 영원히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살리에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저널리스트인가?'라는 질문은 올 한해, 나의 절실한 화두가 될 것 같다. 새해 벽두, 눈을 뜨자마자 발견한 신기주 기자의 글을, 나는 진정 하나의 계시로 삼기로 했다. 그리고 한번쯤은 이렇게 재미없고 거창하게 늘어놓아야 할 것 같았다. 쓰고 나니 창피하지만, 마음이 좀 든든해졌다.

by 박우진 | 2006/02/03 11:58 | 컬럼 | 트랙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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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at 2006/02/0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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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공감의 자리를 잠식했던 이글루스 가든이 실패로 막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이오공감이 수복한 것이 아니라 외부필진들의 ‘오늘의 칼럼’(이하 ‘칼럼’)이 자리잡았습니다. 밸리에서 가독성이 가장 높은 상징적인 위치를 ‘칼럼’이 자리잡은 것입니다. 하지만 ‘컬럼’의 등장은 이글루스 이용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된 사항은 아니었습니다. 일방적이었습니다. 다소 심하게 표현하자면 옥상옥(屋上屋)이요, 군사정권 시절 공기업 사장으로......more

Commented by 잡넘 at 2006/02/03 17:01
전부다 동의하는건 아니지만^^ 솔직하고 좋은글 읽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침 막내에게 글쓰기에 대한 편지식 글을 썼던 참인데, 님의 글도 같이 링크해두어도 괜찮겠지요? ^^
Commented by 기인자혜 at 2006/02/08 00:34


좋네요.
비슷한 꿈을 가진 제겐 음절음절이 비수였습니다.

Commented by 박우진 at 2006/02/08 11:10
잡넘님/ 이런 미천한 글을 링크해주신다니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기인자혜님/ 비슷한 꿈을 갖고 계시다니 언젠가 우리 만날 수도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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